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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건강과 어려운 이웃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평생 헌신적으로 봉사할 것입니다” - 진주 제중의원 배경훈 원장
  • 기사등록 2021-06-03 14:5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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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이하 ‘JC’)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 하는 대표적인 청년단체다. 1951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조국을 재건하자’는 숭고한 정신으로 탄생한 이후 70년 역사를 함께해왔다.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남겨진 JC의 발자취는 일일이 언급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다. 지난 4월 13일, JC중앙회는 진주청년회의소가 개최한 ‘제54주년 창립 기념식 및 회장단 이·취임식’에서 ‘JC자랑스러운 선배상’을 수여했다. 좀처럼 받기 어려운 이 상의 주인공은 바로 진주 제중의원 배경훈 원장이었다. 그는 지난 1968년에 지금의 의원을 개원해 무려 55년째 같은 자리에서 진료를 해왔다. 1979년에는 진주JC특우회장을 거쳐 1986년에는 JC특우회 중앙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평생을 봉사와 헌신으로 살아온 배경훈 원장을 직접 만나 그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진주 제중의원 배경훈 원장(사진=유미라기자)

제12회 남북 이산가족 인솔 단장 맡기도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사들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질병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치매가 오기도 하고 암에 걸리기도 한다. 병 때문이 아니라면 체력 때문에 더 이상 현장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배경훈 원장은 올해 85세의 많은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게 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 또래의 의사들이 현장에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배 원장이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진료 현장을 지키고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한평생을 남을 돕고 봉사하려고 하는 그 열정의 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제가 의사지만, JC활동에도 정말로 많은 열정을 바쳤던 것 같습니다. 모두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함께 먹을 음식도 준비했던 기억들, 그리고 서울에 행사가 있다고 하면 대규모 인원이 관광버스를 타고 오가던 추억들이 생생합니다. ‘JC선배상’이 받기가 어려운 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상을 주신 중앙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저와 함께 JC에 헌신했던 모든 동료, 후배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배 원장이 JC활동을 할 때만 해도 당시 40세면 ‘특우회’로 편입되었다. ‘청년단체’라는 이유로 인해서 40세까지로 회원활동이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45세로 연장이 되었다. 배 원장 역시 40세 이후에는 특우회에서 지속적으로 JC를 지원하며 다양한 서포트를 해왔다. 당시 중앙회부회장과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조직화에 힘썼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배 원장은 “JC활동을 하게 되면 윤리강령을 통해 도덕적인 삶의 자세를 배양할 수 있고 리더십을 기르기에 매우 좋다”고 말한다. 실제로 JC의 여러 강령들은 매우 모범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 의사당에서의 회의 진행 역시 그 모태는 JC라고 한다. 또한, 선후배들의 관계, 지역민들에 대한 봉사의 자세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추기에도 충분하다. 

배 원장은 JC활동뿐만 아니라 적십자 활동도 매우 열심히 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면 그때의 적십자 활동이었을 것이다”라고 회상한다. 

“제가 제12회 남북 이산가족 인솔 단장을 맡았습니다. 7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또 태풍 매미호가 경남 일대에 닥쳤을 때 둑이 터지면서 물난리가 나곤 했습니다. 그때는 적십자 회비도 잘 모이면서 우리 국민이 단결해 위기를 극복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과거의 경험들이 모여서 지금도 여전히 국난을 극복하려는 한국인들의 의지가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주 제중의원 전경

특수 교육 분야에서도 헌신

다만 배 원장은 적십자 활동을 하면서 ‘이산가족상봉소’를 짓는 것은 절대적으로 반대했었다고 한다. 이산가족의 진정한 상봉은 자신의 고향에 직접 가서 자신이 살던 곳의 시냇물도 보고 정자에도 앉아보는 것이 진정한 이산가족의 상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산가족의 슬픔과 정서를 진정으로 돌보려는 그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배 원장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익단체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 모두 순수한 봉사단체에서만 일을 해왔던 것이다. 이 역시 그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배 원장은 부산대 의대에 입학하면서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군의관으로 제대를 한 후 전주 예수병원에서 근무했으며 이어 진주 윤양병원을 거쳐 개업을 하게 됐다. 이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일본 구루메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제가 처음 의사로 일할 때는 병원이 ‘장바닥’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진주는 물론이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왔으니까 말이죠. 그때만 해도 진주에 병원이 30개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시설도 지금에 비하면 당연히 열악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밤낮없이 환자들을 진료하고, 그들이 건강을 되찾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곤 했습니다.”

또 그는 몸이 불편한 특수 아동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많은 힘을 써왔다. 그 결과 그는 지난 2015년에는 진주교육지원청으로부터 ‘2015 진주교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상은 학교경영, 교육연구, 생활지도, 교육여건 조성 등, 진주 교육 발전을 위해 뚜렷한 공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수여한다. 그는 25년 동안이나 진주 특수교육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학생에게 배려와 사랑, 봉사의 정신을 심어주었고 진주의 특수 교육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배경훈 원장은 ‘의사로서의 자세’에 대해서 오래전에 들은 한 스승의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도 이를 실천하려고 한다. 

“의사의 눈은 ‘매의 눈’이 되어야 합니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환자의 몸가짐, 눈매, 피부색 등을 모두 파악해 진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청진기를 대거나 피검사를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 의사는 ‘사자 같은 담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의사는 늘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직업이고 수술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담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사는 ‘비둘기와 같은 손’을 가져야 합니다. 섬세하게 맥을 짚고 부드럽게 환자와 접촉해서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의사의 진료와 수술이 최대한 효율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의사의 성실성은 환자의 건강과 직졀된다는 점에서 매일매일의 생활 태도도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는 이렇게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최근 황망한 아내와 주변 사람의 죽음에 큰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너무 갑자기 먼저 떠나는 바람에 그 죽음에 동의가 되지 않았고 여전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배 원장은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까지 해왔던 봉사와 헌신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도 많습니다. 점점 ‘사람답게 사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동학대나 살해를 하고서도 반성은 하지 않고 자기 살길만 찾아 빠져나가는 모습에서 깊은 실망과 슬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이고, 사람이 전부입니다. 의사로서, 그리고 이 사회의 봉사자로서 더 밝은 사회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는 배경훈 원장과 같은 원로들의 힘에 의해 오늘의 빛나는 발전을 이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배 원장이 여전히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더 건강하게 우리의 이웃을 보살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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