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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랑천’을 날았던 새의 정체는

 

 

의정부를 동서로 갈라놓는 척추같은 '중랑천'은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 중 하나는 ‘도봉산의 산줄기와 본화산이 만나는 부근에 대나무의 잎과 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비유한 죽랑(竹浪)을 소리나는 대로 적다가 중랑(中浪)으로 변음된 것이다.’라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조선시대에 중랑천에는 국립여관인 송계원이 있었고 그 곳으로 가는 송계교(松溪橋)가 있었는데 나라에서 이 다리를 나무다리에서 돌다리로 개축하라는 명이 내려졌고 인근 마을의 장정은 모두 부역으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 부근에 사는 중이(仲伊)라는 장님 또한 열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열여섯 살 되는 딸 하나와 함께 사는 홀아비였다. 처지는 불쌍했으나 국가의 명령이라 거역할 수도 없었고 양주군 관아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인원점검을 해서 보고 한 상태라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을 안 딸은 아버지 대신 부역을 하겠노라고 관아를 찾아가 여러 날을 지내며 간청을 한 덕에 부역허가는 떨어졌는데 그 조건이 반드시 남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관아에서 시키는 대로 남장을 하고 참여했으나 문제는 생리현상이 문제였다. 동료들과 일하다가 용변을 볼 때는 앉아서 하니까 별 문제가 없었지만 배뇨 시에도 앉아서 누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다른 동료들에게 들통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전긍긍하던 그녀는 대나무를 잘라서 옷 속에 넣어 관을 통해 서서 배뇨를 할 수 있게 하고 가능한 한 수분섭취를 줄여서 배뇨 횟수를 줄이도록 노력하였다.

이런 눈물겨운 사연을 전해들은 관아에서는 마침내 중이의 부역을 해제함으로써 부역을 대신하던 그녀의 딸도 눈먼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던 동료들은 그를 중낭자(仲郎子)라고 불렀으나 나중에 남장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그녀를 중랑(仲狼)이라 불렀고 다시 중랑(中浪)으로 바뀌게 되었다.‘라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중랑천’의 그 전 이름은 없었을까?

‘중랑천’의 그 전 이름은 ‘두험천’입니다. 

 

더 오래된 이름을 추적해보면 순수한 우리말로 '샛강'이라 불렸습니다.

'샛강'이라~~~~~.

'샛강'이란?

'사잇강을 뜻하는 지류, 즉 작은 강이나 개울'을 의미할 수도 있고,

'새가 살던 또는 새가 사는 강'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새가 살았던 강'입니다.

그 이름이 더 오랜 이름이기에 지명형성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기도 하고, 팩트를 중심으로한 상상의 날개가 넓게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대로

'중랑천'이 오래 전 '새가 살던 강'이라고 불렸다면,

과연 어떤 새가 살았을까요?

과연 어떻게 생긴 새가 살았기에

의정부 우리 선조님들은 '샛강'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지명으로 남기셨을까요?

지금의 ‘중랑천’을 고산자 김정호가 편찬, 간행한 대동여지도 13첩 4면에는 ‘두험천’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샛강’이라 불렸습니다. ‘두험천’은 왜 ‘두험천’이라 했으며 ‘샛강’은 왜 샛강이라고 했을까? 되짚어 보는 일. 이것이 의정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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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8-03 17: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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