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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론 교육은 공교육화되어야 한다

 

 

 

 

 

“서른여덟에 홀로 된 분, 가난한 살림에 재가(再嫁)도 안 하고 양키 물건 장수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3형제를 키운 분, 3형제 중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낸 분, 3형제를 다 결혼시키며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못해 낼 것 같은 일을 해내신 분, 바로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정말 믿어지지 않게도 어머니는 땅도 조금 있습니다. 재산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저는 어떨까요? 분명 어머니보다 더 많이 배웠습니다. 어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산은 없습니다. 도대체 왜 저는 재산이 없을까요? 왜 돈을 모으지 못할까요? 저도 어머니처럼 재산도 좀 모으고 싶은데, 벌써 나이가 50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불안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이 시대 부모들의 이야기이며, 머지않은 미래의 우리 자식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열심히 살지만 모아 놓은 돈이 없어 노후가 불투명한 사람들 등에는 무엇이 있을까? 빨대다. 돈을 모을 수 없게 만드는 빨대가 등에 수십 개씩 꽂혀 있다. 그 중 우리의 허리를 휘게 만들고, 가정의 경제를 위협하고, 노후를 불안하게 하는 가장 큰 빨대가 사교육비다. 아이 둘에 월급의 절반이 사교육비로 사라지는 세상. 이런 구조 속에서는 선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면 모를까, 어떤 부모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수 없고, 편한 마음으로 여행 한 번 갈 수가 없다.

얼마 전 우리 사회는 논술이라는 잘 알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낯선 교육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고, 지금도 치르고 있다. 방학이면 논술학원을 다니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 온 학생들로 강남 대치동 학원 근처의 집들은 몸살을 앓는다. 시간당 50만 원을 달라고 해도 군소리 한 번 못하고 지갑을 열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논술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가르치는 논술 관련 학과나 대학, 또는 기관이 없다는 것 또한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근거와 기준으로 대치동의 학원에 속한, 또는 그 지역에서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논술을 잘 가르치는 실력 있는 선생님으로 인정을 받을까? 왜 그들에게 큰돈을 지불해야만 하는가?

물론 나름대로 기준은 있다. 소위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곳에 합격한 학생을 가르친 논술 선생님인가 아닌가가 그것이다. 그에 의해 학부모들이 지불하는 값이 달라진다. 한번 생각해 보자. 그 기준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인된 기준, 누가 생각해도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정상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입시 때가 되어 그 선생님에게 논술을 배웠거나, 배우고 있거나, 배우려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도 거기에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혹시나 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미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아이들을 그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교육은 공교육 현장에 그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이 정착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학부모의 불안한 심리가 작용해 틈이 생길 때 비로소 생겨난다. 따라서 주로 새로운 정책이 시작될 때 사교육은 득세한다. 그때가 되면 사교육 현장에서는 ‘새로운 교육정책은 매우 무서운 놈’이라고 과장하며, 학교 밖에서 교육받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것,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어떻게든 아이가 험난한 경쟁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부모들은 자동적으로 자석처럼 끌려 들어간다. 여기에는 부동산 등을 통해 쉽게 돈을 번, 약간의 천민자본주의와 귀족교육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 그래서 비싼 교육비도 어렵지 않게 척척 잘 내는 사람들이 먼저 앞장을 선다.

이처럼 새로운 정책의 발표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공교육의 환경, 부모의 불안함과 사교육의 교묘한 왜곡이 오물조물 엮이고 합쳐져, 사교육비는 이 시대 부모의 등허리를 휘게 만드는 가장 큰 빨판이 되었고, 쓰나미처럼 가계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기도 한다.

 

최근 교육계 최고의 화두는 ‘토론’이다. 열린 교육, 주관식 교육이 요구되는 시대인 지금 토론을 전제로 한 ‘토론식 교육’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136개 대학뿐만 아니라 예체능계열 학과조차도 구술면접을 실시하고 있으며, 국제중․국제고 등 특목고라고 하는 학교들도 구술면접을 본다. 이 구술면접도 토론식 수업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자아를 찾고 자기 표현력을 높여야만 잘 통과해 낼 수 있는 과정 중 하나다. 앞으로 토론 교육 시장이 폭발적일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그냥 놓아두면 또 다시 이 사회에 토론이라는 이름의 사교육 광풍이 불어닥쳐 서민의 생활을 위협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교육받을 수 있는 세상, 부잣집 자녀만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교육이 넘치는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다. 교육은 마지막까지 보통사람들이자 서민들의 희망이어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실력이 되고, 교육을 차별화시켜 다시 또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만들어 내는 세상에서 교육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세상’이 되는 유일한 대안이자 통로여야 한다.

아큐정전(阿Q正傳)을 쓴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은 말했다.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된다.”

이제 시작하는 ‘토론 교육’만은 학원에서 가르치면 안 된다.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대학 입학만을 위한 일시적 교육으로는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토론 교육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하는 아주 중요한 교육이다. 국어․영어․수학과는 차원이 다르다. 때문에 일선 학교에서 많은 교사들이 토론식 수업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토론의 공교육화는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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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10 20: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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