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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지명밟기 이야기 시리즈 14– 환단(桓檀)의 진결(眞訣)

 

고성(固城) 이씨(李氏)를 아십니까?

조선 최고의 명문대가(名門大家),

1만년이라는 조선 고대사를 현재의 시간으로 이어준 고마운 가문의 이름입니다. 

행촌(杏村) 이암(李嵒)

청평거사(淸平居士) 이명(李茗)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선생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조선 구출 1,000년 프로젝트.

때로는 사그러져 가는 조선의 혼에 불을 당기는 노력으로,

때로는 전 재산을 팔아 일제와 맞서 싸우는 광복의 투쟁으로 조선을 무사히 지켜준 아름다운 집안의 이름인 것입니다.

오늘 지명밟기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신동명 박사는 서두에 왜 고성(固城) 이씨(李氏)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을까요?

그건 이 고성(固城) 이씨(李氏) 이야기가 이번 옥재 동굴 이야기에서는 중요한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고성(固城) 이씨(李氏) 이야기가 들어가야 옥재 동굴과 연관하여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물을 찾아낼 수 있고, 조선 고대사에서 의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옥재 동굴과 관련한 최초의 등장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의정부 옥재 동굴은 우리 고대사와 어떤 인연을 맺고 있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지금부터 옥재 동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역사.

옥재 동굴과 연관하여 등장하는 최초의 사람을 찾아 떠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신동명박사의 해체 쑈, 지금 부터 시작합니다. 기대하시라 해체 쑈~쑈~쑈.

杏村先生 嘗遊於天寶山 夜宿太素庵 有一居士曰素佺 

多藏奇古之書 乃與李茗范樟 同得神書 皆古桓檀傳授之眞訣也

해석: 행촌선생이 일찍이 천보산(天寶山)에 노닐 때 태소암(太素庵)에 묵었는데, 한 거사가 있어 말하기를 “소전은 많은 기이한 옛날 책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이명(李茗), 범장(范樟)이 함께 찾아가 신서(神書)를 얻으니 모두 옛 환단(桓檀)의 진결(眞訣)이라. 

 

위의 내용은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이 쓴 태백일사(太白逸史)의 고려국 본기 제8(高麗國 本紀 弟八)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행촌(杏村) 이암(李嵒), 청평거사(淸平居士) 이명(李茗),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마지막으로 소전도인(素佺道人)이 등장하고 천보산(天寶山) 태소암(太素庵)이 글줄을 진행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군요.

그리고 행촌(杏村) 이암(李嵒)이 언제쯤 무슨 이유인지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천보산(天寶山) 태소암(太素庵)에 놀러 왔고요. 그리고 소전도인(素佺道人)을 누군가에게 소개받아 환단(桓檀)의 진결(眞訣)을 얻게 되는데 그 자리에는 청평거사(淸平居士) 이명(李茗)과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이 함께 있었다는 내용으로 정리가 됩니다. 그리고 좀 더 유추해보면 소전도인이라는 사람은 그곳에 거주하는 토박이일 확률이 높으며 한단의 진서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내용도 더불어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소전도인(素佺道人). 

이 분이 중요합니다. 이 분이 옥재 동굴과 관련한 최초의 등장인물이니까요. 

그리고 이 만남 이후에 행촌(杏村) 이암(李嵒), 청평거사(淸平居士) 이명(李茗),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세 사람에게 만주와 간도를 거쳐 바이칼과 중국 대륙에 흩어져 있던 고대 조선의 편린(片鱗)들을 하나씩 하나씩 맞춰나가게 만든 최초의 정보 제공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왜 신박신박 신박사가 옥재동굴과 연관된 이번 이야기에 고성(固城) 이씨(李氏) 이야기를 등장시켜야 했는지 그 이유가 대충 짐작이 되시나요?

조선 구출 1,000년 프로젝트에 참여한 3명 중 2명이나 고성(固城) 이씨(李氏) 집안이니 왜 아니 그랬겠습니까!

잠깐! 그런데 위의 자료를 가지고는 뭔가 부족한데? 

소전도인(素佺道人)과 낙양동 옥재 동굴의 연결성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닌가?

방금 이런 생각들을 하셨죠.

제가 누굽니까? 지명밟기 신동명 아닙니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1335년에 행촌(杏村) 이암(李嵒) · 청평거사(淸平居士) 이명(李茗) ·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이 경기도 양주의 천보산(天寶山) 태소암(太素庵)에서 만나 한민족 상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낼 것을 결의한 후 소전거사(素佺居士)가 석굴에 숨겨두었던 고서를 받아 이암은 『태백진훈(太白眞訓)』과 『단군세기(檀君世紀)』를, 이명은 『진역유기(震域留記)』를, 범장은 『북부여기(北夫餘紀)』와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를 저술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안경전(安耕田)이 2011 상생출판사에서 출간한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한 구절입니다.

아! 소전도인(素佺道人)과 옥재 동굴이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아! 행촌(杏村) 이암(李嵒)과 청평거사(淸平居士) 이명(李茗), 복애거사 범장(范樟)이 옥재 동굴과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그리고 조선 최고의 명문대가(名門大家) 고성(固城) 이씨 (李氏)가문이 옥재 동굴과 관련된 숨어 있는 역사가 이렇게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자! 이제 증명되었나요? 옥재 동굴과 연관한 최초의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그리고 언제, 왜, 무엇을, 어떻게 했나가 모두 쾌도난마(快刀亂麻)하게 해결되셨나요?

그렇군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도원결의(桃園結義)보다 더 소중한 결의(結義)의 자리가 의정부 천보산 태소암 옥재 동굴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조선의 고대사를 지켜내기 위한 행촌(杏村) 이암(李嵒), 청평거사(淸平居士) 이명(李茗),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의 굳은 약속이 옥재 동굴에 숨겨졌던 신서(神書)를 소전도인(素佺道人)으로부터 얻으면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옥재 동굴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니, 

끊어질 뻔한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의 역사가 옥재 동굴에서 새롭게 시작됐으니, 

옥재 동굴 주변으로 마고의 역사, 인류 태초 창세의 역사가 담긴 지명을 붙여야 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요, 신화 속 신성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지명이 붙여져야 했던 것은 너무나도 지당한 일 아니었겠습니까? 

 

제보를 받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혹시나 의정부 낙양동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소암과 그 동네 토박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전도인(素佺道人)과 관련하여 실낱같은 정보라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신동명박사(010-2019-8701)로 정보 제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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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2-16 09: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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