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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서노의 무덤을 찾아서 - 1

 

의정부에는 ‘능(陵)’과 관련한 지명이 매우 많습니다.

‘능골’이 한 곳, ‘능너미’가 두 곳, ‘능논골’이 한 곳, ‘능모퉁이’가 한 곳, ‘능서들’이 한 곳, ‘능안’이 다섯 곳, ‘능안고개’가 두 곳, ‘능안말’이 한 곳 해서 모두 14개 곳이나 됩니다. 

그리고 신곡동 ‘능골’, 용현동 ‘능너미’, 녹양동 ‘능논골’, 민락동 ‘능안’과 ‘능모퉁이’, 가능동 ‘능서들’, 산곡동 ‘능안’, 민락동 ‘능안’, 자일동 ‘능안고개’, 고산동 ‘능안말’은 왕 또는 세자, 옹주의 묘 등이 있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고

고산동 ‘능너미’, 낙양동 ‘능안’, ‘능안고개’, ‘능안(도당골)’ 등은 ‘능(陵)’과 관련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련된 기록이 있는 10개의 ‘능(陵)’ 지명 중에서도 용현동 ‘능너미’(탑석 뒤 옹주의 묘), 녹양동 ‘능논골’(용머리 앞 능에 소속된 논), 가능동 ‘능서들’(정휘옹주와 유정랑의 묘), 자일동 ‘능안고개’(세자곡의 세자무덤)를 뺀 6개는 모두 조선시대 제7대왕 ‘세조’와 관련된 지명 설화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지명이 중요한 것은 지명에 인물, 사건, 배경이 있고 그래서 역사를 증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명과 역사가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질 때 탄성의 반응을 보이며 재미있어합니다. 그것 때문에 지명밟기하는 분들은 더욱 신이 나서 연구하고 설명하곤 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 문제는 지명이 언어로 되어 있다는 함정입니다.

지명과 역사의 퍼즐을 서로 맞추다보면 근원적으로 언어를 해석해야 합니다. 한자풀이도 가져다 붙여보고, 어쩔 수 없이 고대어 사전을 뒤적거리기도 하죠. 그러다 역사적인 사건과 논리적인 맥이 잡혔을 때 맞이하는 그 기쁨이란! 옆 사람이 보고 놀랠 정도로 환호하며 천재라 불러달라고, 내가 이 어려운 걸 풀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게 되죠. 그리고 그 내용을 글에 담아 남기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그알 김상중 버전)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언어학적으로 이런 건데요.”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이야기는 스톱. 정지화면이 되어버립니다.

자 예를 들어볼까요. 의정부 가능역 전철이 지나가는 다리 근처 지명이 ‘가재울’이었습니다. 왜 ‘가재울’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예상하신대로 ‘가재가 많아서’인데요. 어떤 분이 ‘가재울은 가장자리 마을이라는 뜻’이라며 언어학적으로 들어오면 재미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게 됩니다. ‘가장자리 마을’일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릴 때 이곳에서 ‘가재’를 잡고 놀던 우리의 추억과 주장은 바보가 되는 느낌적 느낌.

즉, 지명을 언어학적으로 해체하고 해체하다보면 인물도, 사건도, 배경도 모두 해체되어 언어만 남고 역사는 사라지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는 겁니다.

바로 위의 ‘능(陵)’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능(陵)’을 언어학적으로 해체를 해보면 ‘산의 능선’과 관련되어 있는 지명들로 귀착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능(陵)’은 ‘능선’이 줄어서 된 내용이 후대에 와전되어 ‘능(陵)’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 겁니다.

의정부에 세조와 관련된 ‘능(陵)’에서 세조를 빼버리면 이 역시 ‘능선’이 변한 말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그렇다면 의정부의 세조와 관련된 ‘능(陵)’의 지명도 ‘능선’이었는데 역시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야기꾼들이 창작해냈거나 후대가 와전시킨 지명은 아닐까요?

 

지명이 가지는 언어적 한계, 참 난감한 내용입니다. 그려.

어디에다가는 ‘능선’이라는 해석을, 어디에다가는 ‘능(陵)’이라는 해석을 일관성 없게 붙여야 하니 말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지명 연구의 묘미이자 지명이 주는 행복이요, 권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명밟기’ 활동을 하는 분들은 언어학적인 해석에서 언제쯤 역사적 사건으로 넘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고민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말입니다. 하하.

제가 볼 때 지명이 역사적 사건과 만나려면 첫째 역사적 사건(구전 포함)이 존재해야 하고, 둘째 관계성 깊은 지명이 두루 분포해야 하며, 셋째 한 개의 주제로 묶일 수 있으면서, 넷째 추측 가능한 정황적 증거(사료, 금석문, 토착 집안의 족보 또는 내력, 산제사나 제사의 축문, 다수의 공통된 증언 등)가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양주도 ‘능(陵)’과 관련된 지명이 많습니다. 면 단위  별로 보면 전 지역에 걸쳐 대부분 한 두 개씩은 존재한다고 보일 정도로 고르게 분포하는 지역이죠.

그 중 백석면은 ‘능(陵)’ 지명이 매우 많이 발견되는데, 특히 방성리에 집중되어 있다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대모산(大母山)’을 중심으로 ‘능(陵)’ 지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대모산(大母山)’을 에워싼 양주읍 어둔리와 남방리에서는 ‘산성’과 ‘토성(土城)’ 관련 지명이 다수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백석면 방성리(防城里)의 고능말, 고만이안, 능안(능내), 산성말, 능모퉁이, 대모산이 그렇고, 양주읍 어둔리(於屯里)의 산성마을(산성동-대모산 근처 동네), 성재(와평마을과 녹양동 버들개 사이에 성이 있었다 해서 생긴 지명). 그리고 남방리(南坊里)의 성너머(토성 너머), 신성말(신성동-토성)이 그렇습니다.

방성리(防城里), 성(城)을 방어(防禦)해주는 마을이라! 성에는 무슨 귀중한 물건이 있었기에 성을 방어해주는 마을까지 있어야 했을까요? 

방성리(防城里)라는 마을 이름이 만들어지게 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까닭이 있습니다만

[방축리(防築里)에서 ‘방’자와 산성리(山城里)에서 ‘성’자를 따서 만든 이름, 방축리라는 땅 이름은 마을 앞에 북서 계절풍을 막기 위해 흙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은 방축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산성리는 근방에 양주의 외성인 산성(옛 양주 대모산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방축(防築)은 성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방성리(防城里)나 방축리(防築里)는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지명일 뿐입니다.

성(城) 안에 무엇이 있었기에 마을이 에워싸고 방어를 해야만 했을까요?

그것을 추적하는 다빈치 코드가 방성리(防城里) 안에 등장합니다. 

그 정체는 바로~. 바로~~. 바로~~~ ‘고능말’입니다. 

‘고능말’은 1895년 일본군사지도에 ‘고능리(古陵里)’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나타납니다. 일본넘들이 지도에 글자로 적어놓을 땐 얼마나 치밀하고 깊은 연구가 끝나야 하는지 아시죠?

아하! ‘능(陵)’이 있었구나!

그걸 지키려고 성을 쌓고 바람을 막고 물의 침범을 막기 위해 마을에 방축을 하였구나. 

그렇다면 누구의 ‘능(陵)’이기에 마을이 나서서 그렇게 소중하게 지켜야만 했던 것일까요? 

그 숨겨진 역사를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우리 선조님들이 징검다리를 두 개 준비해 주셨는데요. 그 지명은 바로 ‘토성’과 ‘대모산’입니다.

‘토성’은 초기 백제의 성이라는 것을 추적할 수 있고 ‘대모산’은 ‘여제 소서노’와 연관된 지명이라는 것을 추리해낼 수 있습니다. 도대체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대모산의 높이는 212.9m이며, 의정부시 북부의 녹양동에서 양주시 백석읍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낮은 구릉성 산지의 정상을 돌아가며 쌓은 양주 대모산성이 남아 있어 색다르게 느껴진다. 양주 대모산성은 북쪽의 불곡산과 남쪽의 호명산·홍복산 사이, 낙타의 혹과 같이 생긴 봉우리에 있는 산성으로 본래 조선 시대 관방요처(關防要處)였다. ‘양주산성’ 또는 ‘할미산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대모산’을 부르던 다른 이름은 ‘할미산’이었습니다. 마포구에도 ‘할미산’이 있습니다. 그 산을 사람들은 ‘노고산’이라고도 부르죠. ‘할미산’의 다른 이름은 ‘노고산’이기도 한 겁니다. ‘노고산’은 소서노 여제가 중국 산동 어하라 지역(패대(浿帶, 패수와 대수지역, 지금의 하북성 난하 부근))에서 인천 소래포구를 거쳐 부천, 마포, 파주, 양주, 포천, 의정부 회룡분지에 하북위례성으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그 지역들을 점령하고 산짐승을 잡아 ‘타살굿’을 지냈던 산에 붙여진 이름이니 ‘대모산’은 ‘여제 소서노의 산’으로 정리되는 겁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정리해보면 ‘대모산’은 ‘여제 소서노의 능’이 있는 산이 되는 겁니다.

‘큰 어머니의 능’을 품고 있는 산. ‘대모산’

아~! 역사 속에서 흔적없이 사라졌던 여제 ‘소서노의 능’이 이렇게 저희 앞에 나타나게 되어버린 건가요?

기원전 6년 온조왕 13년 2월 ‘소서노 죽음의 역사’가 이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인가요?

 

 

신동명 교육학박사

 

현) 세한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현) 전국지명밟기운동본부 대표

저서: 역사소년 신새날, 십대토론, 행복한 수다가 치매를 예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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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16 12: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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