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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議政府)는 가짜고 의정부(義情阜)가 진짜다. 지금 당장 수탈의 상징 의정부(議政府)를 버려라!
  • 기사등록 2024-03-01 11: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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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議政府)는 가짜고 의정부(義情阜)가 진짜다. 지금 당장 수탈의 상징 의정부(議政府)를 버려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의정부는 왜? 의정부인가요?”

아마도 이 질문은 ‘그 동네는 왜? 조선 관청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하나요?’가 될 겁니다.

의정부 토박이나 의정부 지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의정부 회룡사 근처에 있는 전좌마을에서 무학대사의 주선으로 첫 화해를 한 자리라고 말합니다. 문화원도 이런 내용을 근거로 회룡문화제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먹물 좀 드셨다는 분들의 주장인데, 의정부라는 관청에 공납을 하던 땅인 ‘둔전(아문둔(衙門屯))=둔야면=둔배미’가 있었기 때문에 의정부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주장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주장하면 주장할 수 록 수렁에 빠지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의정부는 첫 번째 화해 장소가 아닙니다. 태종실록에 보면 태종 2년 12월 8일에 황해도 금천의 금교역에서 만났다는 기록이 버젓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성계에게 도장 직인을 받기 위해 삼정승 즉 의정부 관료들이 회룡분지 전좌마을에 왔으니까 의정부라고 하는 게 맞는 거 아니냐라는 주장에 대하여는 일단 그 당시에 의정부 회암사, 양주 회암사지, 동두천 행궁을 태조 이성계가 왔다갔다 했지만 주로 양주 회암사지에 더 자주 있었기 때문에 직인을 받기 위해 회룡사에 자주 왔기에 의정부라고 쓰기에는 그 횟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한 이 정도로 해석이 될 거라면 최초일 것이라는 자부심에서 멀어진 이야기기 때문에 의정부와 이성계와의 관계를 이젠 놓아주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제기된 의정부 관청에 공납한 아문둔(衙門屯)이 있었던 것이기에 조선 관청 이름인 의정부(議政府)를 사용했다는 말은 자부심에 너무나도 상처가 나는 주장이어서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명입니다.

전국에 아문둔(衙門屯)이 있는 곳이 의정부(議政府)만이었을까요? 근데 하필 우리 동네에만 그 이름을 적용한다?

또한 이 아문둔(衙門屯)은 조선 시대 후기 양반관료들의 수탈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단어를 우리 지역에 가져다 사용한다?

이는 현재 의정부하면 떠오르는 ‘부대찌개’와 별반 다른 이미지가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의정부(議政府)라는 지명이 공식적인 문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796년 정조대왕 20년 승정원일기에 「楊州 直谷(곧은골)坪[평-들]과 議政府坪으로 달려가 農事을 살폈다」라는 내용으로 등장을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문서로는 그것보다 9년 앞선 1787년에 노상추라는 사람의 일기에 

「28일(갑자) 맑음... 

이날 길을 떠나기로 하였는데 여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다 겨우 정이성 형에게 70금을 얻어 행장을 꾸렷다. 오후에 이성 형과 함께 북쪽으로 출발하는데 친척들이 찾아와 전별했다...(중략) 

30리를 가서 누원점에 도착했는데 이성 형이 쉬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리를 더 가서 의정부(義正部)점에 도착하였는데 이성 형은 서오랑점으로 바로 가고 나는 역을 찾아 다시 십리를 가서 녹양역에 묵었다. (하략)」라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이 두 가지 기록을 두고 볼 때 ‘의정부’라는 지명은 다양하게 표기되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00년 뒤인 1864년 고산자 김정호가 발간 대동지지에는 과거 남주(양주의 남쪽=현재 의정부)로 표기되던 의정부 지역에 ‘議情阜’라는 표기로 지명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48년 뒤인 1912년에 ‘의정부리’라는 지명이 등장합니다.

의정부역이 등장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더니 30년 뒤인 1942년에 ‘의정부읍’으로 승격이 되고, 21년 뒤인 1963년 마침내 ‘의정부시’로 승격이 됩니다.

 

우리 지명밟기 회원들은 ‘의정부(議政府)는 가짜다. 의정부(義情阜)가 진짜다.’라는 주장을 합니다. 

왜 그런 주장하는지 저희의 주장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필이 꽂힌 것은 ‘역(驛)’입니다.

일제 초기에 의정부에 ‘역(驛)’이 생기면서 의정부라는 지명이 급속도로 자리를 잡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나요? 그 당시에 ‘역(驛)’은 어떤 역할을 한 겁니까?

지금과 같이 여행과 번화가의 상징이었나요? 아니죠. 수탈과 착취의 상징이었죠. 그런데 그런 역할을 한 ‘역(驛)’이 생기면서 의정부라는 지명이 일제 시대 초기에 생긴다? 이게 냄새가 나도 너무 냄새가 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사를 해본 결과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 의정부(議政府)라는 이름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일본 놈들의 음모가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찾아내게 된 겁니다.

일단 의정부에 왜? 역이 생겼을까? 무슨 수탈해갈 구체적인 돈되는 물건은 있었던 것일까?

네. 있습니다. 돈이 되어도 너무 값비싼 돈이 되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바로 바로...청옥(靑玉)입니다.

일본 놈들은 이 청옥을 빼앗아가기 위해서 의정부에 역을 세웠던 것입니다.

의정부에 청옥이 나온다고? 어디에? 진짜 처음 듣는 이야긴데?

그렇습니다. 의정부 사람들도 모르는 보물을 일본 놈들은 자세히 조사하고 엄청나게 훔쳐갔습니다.

어디에 있냐고요? 의정부 낙양동 오리골에서 포천 무림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옥재’에 그렇게 아름답고 품질 좋은 청옥이 났습니다.

그래서 지명 이름이 옥재 아닙니까! 옥재.

이 청옥은 3,000여 년 전에 오리골과 귀락마을에 존재했던 모수국(牟水國)이라는 나라에서 중국과 직접 무역을 했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1권-경기편’에 남아 있으며, 세종실록 119권, 세종 30년 3월 29일 갑인 4번 째 기사에도 「楊州産玉品甚美, 命尙衣院作御帶 (양주에서 생산되는 옥의 품질이 매우 좋으니 상의원에 명하여 어대(御帶)를 만들게 하였다.)」라는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건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일본 놈들은 어떻게 알고 훔쳐 갈 수 있었던 걸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동네 토박이이신 홍대연 어르신의 증언에 의하면 일제 때 엄청난 양의 청옥을 파갔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아! 그래서 일제가 의정부에 역을 세워야만 했던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다 보니 재밌는 것은 ‘의정부역’이 처음부터 ‘의정부역’이 아니라, 처음에는 ‘보통역’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역에 이름이 없었던 거죠. 

역에 이름이 없었다면 분명히 일제 놈들은 자료를 찾아봤을 겁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열광한 그들은 정확한 정보를 위해 김정호가 남긴 자료들을 제일 먼저 참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議情阜’라는 글자에 눈길이 꽂혔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議情阜’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 WHY, 뭐 땜시? 

그들은 이 글자에 피휘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았을 겁니다.

의정부(義情阜)의 옳을 의(義)자를 회의할 의(議)로 피해선 쓴 글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 뜻이 ‘의순공주를 그리워하는 언덕이 있는 곳’이라는 것도 바로 해석 가능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입니다.

일제는 수탈과 착취를 위해 역을 세우고 그 다음에 하는 작업이 조선의 혼을 빼앗고, 자신들의 정신을 심어 넣는 일에 착수합니다.

그래야 조선인들이 분열하고 단합할 수 없게 되면 지배와 착취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지역적 자부심을 갖는 어떤 일도 허용해서는 안됐던 것이었죠.

그래서 그들이 의정부역을 세우는 동시에 함께 추진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신사(神社)를 세웁니다. 그리고 역을 건설할 돈을 내라고 강요를 하죠.

의정부에 일제놈들의 신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요?

대부분 그러실 겁니다. 현 의정부 중앙교회 자리가 일제시대 신사터입니다.

저희 회원들도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니까요.

그러면 어떤 신을 의정부 신사에 모셨을까요?

놀랍게도 천휘대신이라고도 하고 일조대신이라고도 하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의정부 신사에 모셨던 겁니다.

그게 누구냐고요?

일본 최고의 신이죠. 태양을 상징하는 신으로 일본 전범기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의 주인공이 되는 일본신입니다.

아이고야! 어마어마한 놈을 심어놨군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할 의순공주 사건이 대단한 사건이었던 가요? 

네! 맞습니다. 의순공주 사건에는 어마어마한 지역자부심으로 작용할 에너지가 넘치고도 넘쳤죠. 의정부 지역주민들이 뭉칠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가 숨어 있었던 겁니다.

그게 진짜냐고요? 진짜죠. 의정부 3.1운동 만세 사건만 봐도 의순공주가 의정부에서 어떤 에너지로 작용했는지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의정부 3.1운동 만세사건? 그런 게 있었다고요?

아마 처음 듣는 분들도 있으실 건데, 윤원세(천도교 양주교구장) 이윤의를 중심으로 한 의정부 금오동(금오동 390번지, 400여명 참여) 만세 사건과 과 조금호 등을 중심으로 한 의정부 자일리(자일동 362-2, 30여명 참여) 만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의순공주 묘역이 이 두 3.1만세운동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

이제 뭔가 의미심장한 내용이 가슴을 파고 들죠!

지역적 자부심이 없는 사람들이 나라 독립을 외쳤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애국심은 애향심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지역적 자부심으로 똘똘 뭉칠 수 있는 어떤 에너지가 이 지역에는 작용하고 있었던 거죠.

일본놈들은 이런 사건이 터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지역적 자부심을 소멸시키기 위한 갖은 악행을 저질렀던 겁니다.

어찌 되었든 일본놈들은 의순공주 사건을 뒤져보니 너무 쎈 사건이었던 겁니다. 16살에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선 여인, 나라를 구하겠다고 딸을 내놓은 아버지. 대국 청나라를 굴복시키겠다고 북벌을 주장하며 청나라 몰래 군사를 훈련시킨 효종과 이완대장.

그래서 일본 놈들이 가장 먼저 왜곡시킨 것은 어룡(魚龍)리였습니다. 원래는 임금과 연관된 지명이었던 어룡(御龍)리를 어룡(魚龍)리로 바꾸었던 겁니다.

창지개명(創地改名)을 시도한 거죠. 지역적 자부심으로 꺾고 단결하지 못 하도록 조치했던 거죠.

이런 일본놈들의 입장에서는 고산자 김정호의 의정부(義情阜)는 굉장히 위험한 이름이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조치한 방법은 수탈을 정당화 하는 의정부(議政府)로 쓰는 것이 의정부 시민들을 다루기에 알맞았던 거죠.

왜? 앞에서도 밝혔지만 의정부(議政府)라는 이름에는 수탈이라는 의미가 이미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전에서도 수탈당했고, 너희들이 지금 수탈당하는 것은 지역적 운명이다. 뭘 이런 뜻이 되는 거겠죠.

아하! 의정부에 이름이 없는 역(보통역)이 세워지면서 분명히 적당한 이름이 필요했을 것이고, 가장 먼저 김정호의 지리지를 참고했을 게 뻔한데, 義情阜라는 이름을 일본놈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거군요. 

역사는 흘러흘러 아무도 이런 문제제기가 없던 상황에서 의절부리는 의정부시가 되었고 벌써 6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수탈의 상징 의정부(議政府)를 반성없이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경기북부지명밟기운동본부가 출범하고 의정부라는 지명이 의순공주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본 주도하에 철저히 왜곡되었다는 것이 밝혀진 순간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길에 서게 되는 겁니다.

왜곡과 수탈의 상징인 의정부(議政府)를 계속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김정호가 남긴 다빈치 코드인 의정부(義情阜)를 사용할 것인지?

왜곡된 진실을 수정하고 바르게 정착시키는 데에는 많은 난관과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진실을 알면서 외면하는 것은 거짓에 동조하는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없습니다.

이제 의정부는 관과 시민들이 나서서 김정호가 남긴 의정부(義情阜)를, 민족혼이 가득 담긴 의정부(義情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의정부는 나라를 살린 의롭고 위대한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신동명

전국지명밟기운동본부 총재

서정대학교 휴먼케어서비스과 겸임교수

저서: 역사소년 신새날, 행복한 수다가 치매를 예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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