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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을 바꾸는 바탕교육

 

 

 

 

 

“자, 제가 내는 문제를 맞추면 오늘 저녁을 사겠습니다.”

“와~!”

강연에 참석한 많은 학부모들의 눈이 반짝거린다.

“김구와 간디에게는 있고 히틀러에게는 없는 것은?”

“수염.”

“모자.”

여러 가지 답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기다리다 말한다.

“그건 이름 앞에 ‘훌륭한’이란 단어가 붙느냐 안 붙느냐입니다.”

“어, 그것도 그러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민족의 지도자였다는 겁니다. 그럼 이 세 사람 중 누구의 연설이 가장 유명할까요?”

“…….”

“히틀러입니다. 히틀러는 ‘폭포와 같은 연설’이라고 해서 대중이 목말라하는 부분을 잘 짚어내 시원하게 한방에 날려주는 연설가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나치당의 대표 연설가이자 선동가였던 히틀러가 연설을 하고 지나가면 거기에 매료된 수많은 독일 청년들이 앞장서 나치당에 입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설을 잘했던 히틀러의 이름 앞에 왜 우리는 ‘훌륭한’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을까요?”

“나쁜 놈이잖아요!”

“그렇죠. 민족의 지도자이긴 했지만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전 세계를 전쟁의 공포에 몰아넣었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인류를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게 만들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보다는 고통을 준 것이죠. 반면 김구나 간디에게는 ‘훌륭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자기 민족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는 민족을 먼저 생각했고, 불의에 맞서 정의를 외쳤기에 우리는 지금도 그분들의 정신을 본받으려 합니다. 우리는 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과 역할이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품성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들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며, 결과적으로 이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인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지도자의 행위는 자신의 이름 앞에 ‘훌륭한’을 붙일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 욕을 먹게 하기도 합니다.”

 

교과서에 쓰인 글자를 외우면서,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달달 외우는 것만으로는 그처럼 되기가 어렵다. 만약 그것만으로도 가능하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따돌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종종 미디어를 통해 우수한 학생들이 친구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있지 않는가!

토론식 교육은 아이들이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 지속적인 토론식 수업을 통해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자기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자기 자신처럼 모든 사람들도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친구를 왕따시키거나 놀리거나 괴롭히는 행동은 할 수가 없다.

토론을 제법 오래 가르치다 보니 많은 관심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어느 날은 시를 쓴다는 분이 찾아왔다. 이러저러해서 같이 밥을 먹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대뜸 “토론은 기초 교육이죠?”라고 묻는 게 아닌가!

나는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왜 기초 교육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부를 잘하게 되니까요!”

“글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바탕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뭐가 다르죠?”

“토론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교육인 기능 교육 또는 기초 교육이 아니라 ‘올바른 세계관을 정립시키고 그에 따라 실천하는 지도자를 육성하는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동의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성적 올리는 기초 교육이라고 하던데…….”

“물론 책 읽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똑똑해지고 성적이 좋아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이며 토론을 기능 교육만으로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해석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나 할까요. 토론의 목적은 보다 근본적이고 거대한 작업, 즉 인간 변화에 있습니다.”

“그렇게나 거창한가요?”

“인류 역사 이래 말과 글은 지도자의 기본요소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도 글을 익힌 말 잘하는 돼지들이 지도자로 군림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기본요소란 ‘빠져서는 안 되는 것, 꼭 있어야 되는 것’이라는 뜻으로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모두 말과 글을 잘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말과 글을 잘 사용하는 사람에도 두 부류가 있긴 합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지도자이고, 하나는 사기꾼입니다.”

“누구는 지도자가 되고, 누구는 사기꾼이 되는 차이는 뭐죠?”

“생각의 차이입니다.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이죠. 그것은 토론 교육을 통해서 형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탕 교육’이 되는 겁니다. 성적을 올리는 기초 교육, 책을 빨리 읽는 기능 교육을 넘어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이니까요.”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토론 교육마저도 성적을 올리는 수단의 하나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토론은 답을 찾는 훈련이 아니라 ‘창의성과 논리성을 체득화’하는 교육과정이다. 토론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게 된다.

‘훌륭한 삶’이란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간 사람의 생활’을 뜻하지는 않는다. 동네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더라도 투명하고 정직하며,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있어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섬으로써 주변을 변화시켜나가는 사람의 삶을 말한다. 이런 일들이 토론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래서 토론 교육은 사람의 바탕을 다지는 바탕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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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29 01: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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