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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지명밟기이야기-외전 1-2. 

 

2. 우연한 여정

 

 “형님 이번 미군공여지 탐방은 산곡동 뺏벌에 있는 캠프 스탠리입니다. 함께 가실 거죠?”

 “나는 산행을 안 하는데? 살 빠진단 말이야.”

 “선발대가 미리 가서 근처의 환경을 확인하고 마지막은 흑석계곡에서 발 좀 담그고 내려오는 걸로 하려고 합니다. 형님도 선발대로 함께 가세요.”

 “…….”

 그러면서도 후배는 어떤 낌새를 눈치챘는지 내 눈빛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대답 없으시니 승낙한 걸로 알고 형님까지 4명이 선발대로 가겠습니다. 모이는 것은 캠프 스탠리 옆 의정부 교도소 주차장에서 오전 7시까지입니다.”

 

 초여름의 오전 7시는 꽤나 밝았다. 선발대로 참여한 각 단체 대표들은 모자에 운동화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속속 모였다. 

 사실 나는 전날 밤 인터넷과 그동안 준비해왔던 자료들을 뒤지며 설레는 밤을 지샜다. 미군부대 캠프 스탠리 뒤 골짜기가 ‘뭉어리골’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산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어제 후배의 참여 독려에 잠시 망설였던 건 혹시 그 ‘뭉어리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의정부 교도소 주차장에서 합류한 4명의 선발대는 남양주 별내 쪽으로 연결되는 큰길 방향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들은 그늘을 만들어 큰길 도로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캠프 스탠리 정문을 지나 우측으로 꺾으니‘뺏벌마을’이라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뺏벌’은 ‘배벌’, ‘뱀벌’, ‘빼벌’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고, 그 이름의 수만큼 다양한 해석이 따라다닌다. ‘배가 많이 나던 과수원이 있던 곳’, ‘임진왜란 때 백병전이 일어난 곳’, ‘뱀이 많이 나오던 곳’, ‘한 번 빠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기지촌 여성의 아픔’ 등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보면 거기서부터 미군부대 후문까지가 미국클럽이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왼쪽으로 농협이 보이고 조금 올라가서는 ‘두레방’이라는 집이 보인다. 문동환(문익환 목사 동생) 목사의 부인이 기지촌 여성들에게 영어와 재활의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운영되었던 공간이어서 대학 졸업 시기에 몇 번 다녀갔던 추억이 떠올려졌다. 

 선발대는 캠프 스탠리 후문이자 작년까지 운영이 되었다는 BBQ 상가 앞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함께 간 사람 중에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후배 최경○가 있어 후문에 새겨진 미군부대 푯말을 해석해주는 사이에 차가 한 대 미끄러지듯 우리 곁에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안사람을 출근시키고 오느라고…”

 멋쩍은 듯 김윤○ 대표가 차에서 내려 인사를 했다. 

 원래는 선발대에 함께할 생각이 없었는데, 고재○ 대표가 올린 시민회의 단체 카톡방에 캠프 스탠리 후문 쪽으로 올라간다는 글과 사진을 보고 ‘내 고향인데 우리 동네에 온 사람들을 그냥 모르는 체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달려왔다는 것이다. 

 

 “이 BBQ 가게는 요즘에도 하나요?”

 “잘 모르겠네요. 고향이긴 하지만 요즘 이 동네에 자주 못 와봐서.”

 “이런 가게들이 사실 역사 자체인데… 작년까지는 제가 와서 먹었거든요.”

 “맞아. 미군부대 앞에 있는 BBQ 치킨 맛은 달라.”

 “이런 역사들이 사라진다는 게 아쉬워요. 도시재생사업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지 않나?”

 “그러잖아도 가능동 클럽 거리의 향군 클럽은 의정부 문화재단이 사들였거든. 내가 안 되겠다 싶어서 문화재단에 이야기해서 구입하도록 다리를 놨어.”

5. 산곡동 캠프 스탠리 미군부대 후문

6. 캠프 스탠리 후문에 자리한 BBQ집. 이곳에서 파는 치킨의 맛은 시중의 것과 매우 다르다.

의정부 왕발 고재○ 대표가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김윤○대표님, 그때 저랑 인천 강화도 교동도 도시재생사업 현장 다녀오셨잖아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저도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교동도는 예전 모습 그대로를 재생시켜서 정말 동네 자체가 다시 살아난 성공케이스인거 같아요.”

 “도시 전체가 스토리를 품고 있으면 천년 먹거리가 되는 겁니다. 오늘 걷는 이 거리를 도시재생사업으로 되살려 보자고요. 그리고 지금 저 건너편에 저 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소비 시장까지 형성됐으니 말입니다”

 “기지촌이라 손가락질 받던 아픔도 역사의 한 장면이므로 지우려하기 보다는, 지키고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시재생사업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너도나도 준비한 것처럼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하루에 두 번씩 1번 버스가 미군부대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 후문으로 나왔던 거 아세요?”

 김윤◯대표는 자기만의 추억을 꺼내놓았다.

 “아. 들은 거 같네요.”

 “당시 미군들은 지역 사람들하고 유대관계를 유지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거죠.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부대 구경하려고 일부러 그 시간 버스를 타곤 했다니까요. 하하하.”

 “나도 그 버스를 타본 거 같은데?”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내가 차창 너머 부대 안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 버스를 탔었구나.

 이때 앞장서며 김윤○대표가 우리를 안내한다.

 “이쪽으로 오세요.”

 캠프 스탠리 후문 마지막 집 천막을 들추며 우리보고 들어오란다. 남의 집을 무단 침입하고 있는 듯한 입구였다. 몇 발 내디디니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캠프 스탠리의 담을 끼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인 줄 알았는데, 그 뒤에 이런 길이 있다니? 참으로 색다른 경험이다.

 

 길이 조금씩 가팔라지면서 계곡이 가까웠다는 느낌이 들 때쯤, 오른 편에서 밭을 매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계곡이 가까워서인지 안개가 남아 있고 나무들로 우거져 약간 어두웠다. 김윤○대표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여러 사람이 함께 올라오는 모습을 본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신다. 나는 일부러 뒤처져 할머니에게 나직이 여쭈었다.

 “할머니. 여기서 ‘뭉어리골’을 가려면 어떻게 가요?”

 그 순간 할머니와 일행은 화면이 정지된 듯 멈췄다. 정확히 표현하면 올라가던 모든 사람들이 “‘뭉어리골’ 어디로 가요?”라는 질문에 귀를 쫑긋 세운 것이다.

 

 멈춰진 회색 화면을 컬러풀하게 정상화시킨 것은 할머니의 환한 웃음과 답이었다.

 “쭉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거기가 ‘뭉어리골’이야.” 

 아마도 그때 할머니가 지은 그 놀라움의 표정과 잠시 멈춘 화면, 웃음 가득한 대답은 누구도 찾지 않아 잊혀버린 과거가 기쁘게 소환되는 것이었으리라. ‘뭉어리골’로 불러질 때 기억은 아득한 옛날의 불을 켠 채 우리를 맞이한 것이다.

7. 캠프 스탠리 후문 왼쪽으로 난 뭉어리골 가는 지름길. 

8. 새벽에 할머니를 만나 ‘뭉어리골’ 가는 길을 물어본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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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16 18: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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